금융위기 10년… ‘저성장 늪’에 빠진 한국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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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금융연구원, G20 경제 비교

《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미국 투자은행(IB)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이 이달 15일 10주년을 맞는다. 위기 진원지였던 미국이 경제 호황을 발판으로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는 것과 달리 신흥국뿐 아니라 한국에는 여전히 위기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10년 새 한국의 대외 건전성은 좋아졌지만 저성장 구조가 고착화되고 급증한 가계부채가 뇌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
 
2008년 9월 15일 미국 4위 투자은행(IB)이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며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가 올해로 10주년을 맞는다. 한국 경제는 한때 금융위기를 조기 졸업한 성공모델로 꼽혔지만 막상 10년이 흐른 현재 ‘저금리, 저성장의 덫’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

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이 부채 부담을 털어내고 고공 성장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은 성장동력이 확연히 떨어진 채 폭증한 가계 빚에 발목이 잡힌 모습이다. 세계 각국이 경기를 살리기 위해 돈을 풀며 생겨난 ‘저금리 파도’가 한국을 덮친 셈이다. 신흥국 금융 불안에 따라 ‘10년 주기 위기설’이 불거진 가운데 다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한국 경제가 이를 견딜 내성이 부족해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 저금리-저성장 덫에 갇힌 한국
40대 회사원 김모 씨는 요즘 서울 강남구의 중형아파트에 거주하기 위해 체계적인 대출 전략을 세우고 있다. 강남의 ‘똘똘한 집 한 채’를 마련하기 위해 이미 약 2억 원을 대출받은 상황. 인터넷전문은행 등에서 신용대출을 받고 지인들에게도 돈을 빌렸다. 현재는 제2금융권 대출까지 고민하고 있다. 그는 “최근 대출금리가 뛰고 있지만 금융위기 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초저금리”라며 “지금이라도 대출을 받는 게 낫다”고 말했다. 김 씨처럼 전방위로 대출받는 사람이 늘면서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는다”는 뜻에서 ‘영끌 대출’이란 말까지 생겨났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생겨난 이런 현상은 가계부채 통계로도 입증된다. 본보가 한국금융연구원에 의뢰해 지난해 주요 20개국(G20)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을 위기 직전인 2007년과 비교한 결과 한국은 22.5%포인트 증가했다. 중국(29.6%포인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늘어난 것이다. 반면 미국(―19.2%포인트)을 비롯해 독일(―8.2%포인트), 영국(―6.1%포인트), 일본(―1.0%포인트) 등 주요 선진국들은 일제히 가계부채를 줄였다.

저금리로 인해 급증한 가계 빚은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들며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 급등세를 이끌고 있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국내 가계(비영리단체 포함)의 주택자산 규모는 2014년 3120조5000억 원에서 지난해 3761조5000억 원으로 20.5% 늘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가계부채를 그대로 방치하면 분명 위기에 빠질 것”이라며 “대출을 규제하면서 금리도 인상해야 하는데 경기 때문에 금리 인상이 쉽지 않아 문제”라고 지적했다.

○ “한국 경제 10년 전보다 앞으로 더 걱정”

금융위기 직후 반짝 회복됐던 성장동력도 크게 약해져 있다. 금융연구원이 2007년과 올해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성장률은 오히려 2.42%포인트 뒷걸음질쳤다. 유럽연합(EU)을 제외한 19개국 중 13위에 그쳤다. 반면 미국은 1.12%포인트 늘어 1위를 굳건히 지켰다.

침체된 내수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기업의 투자, 생산이 살아나야 하지만 기업들도 새로운 성장 엔진을 키워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GDP 대비 기업부채 비중이 10년 새 9.7%포인트 늘어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기업들이 위기 이후 부채를 늘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것”이라며 “하지만 뒤집어 보면 기업들이 적극 자금을 조달해 투자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10년 전보다 앞으로 닥칠 위기가 더욱 걱정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10년 전에는 수출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이 있어 생산과 투자가 늘었지만 이젠 반도체 등에서도 중국에 뒤지는 처지”라며 “2008년 위기 이후 성장동력을 찾았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가계와 기업부채 비중이 모두 급증한 중국이 다음 글로벌 위기를 촉발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중국은 부채가 최악 수준이고 미국과 무역전쟁에 ‘일대일로 정책’도 좌초될 분위기여서 리스크가 커졌다”며 “아르헨티나, 터키, 브라질 등 신흥국도 위기가 확대될 수 있어 한국은 대외 리스크에 견딜 수 있는 체력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은아 achim@donga.com·김성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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